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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병원에 서비스 맥박이 뛴다!_선승훈 의료원장
[장일현 기자의 인&아웃] 환자 중심 병원의'교과서'… 大田 선병원 선승훈 원장

간호사가 환자 베개 높이까지 메모… 기록과 매뉴얼이 우리 병원의 힘

국내 의료계에 뿌린 '서비스의 씨앗'
"환자 마음까지 어루만지는 병원 만들자"… 서비스 교육으로 직원들 태도 바꿔
호텔 서비스 전문가 초빙해 강의 듣기도

의료 서비스 평가 외래·입원 모두 A 받아
국내 종합병원·해외 의료진 견학 줄이어

아버지 병원 경영 맡아
은행 일하다 병원 와보니 환자에 퉁명스러운의사·간호사·직원들…
고쳐야할 점이 수두룩

병원 직원들 해외 탐방
현지 호텔·식당 서비스 마음껏 즐기고 오라 해
직원들의 그런 체험으로 병원 서비스 업그레이드

조직의 관행 바꾸기
처음엔 격 떨어진다고 서비스 교육에 반발
내 진심 전하려 노력… 맨손으로 변기 청소까지



"이번 여행에서 해야 할 딱 한 가지 임무는…."

2005년 4월 초 인천국제공항. 선승훈 대전 선병원 의료원장이 입을 열자 간호사·직원 20여명이 귀를 기울였다. 그가 말한 딱 한 가지 임무란 3박 4일 태국 방콕과 싱가포르를 여행하는 동안 '아무 생각 하지 말고 그냥 즐겨라'였다. 선 원장은 "비행기·호텔·음식점 등에서 다른 사람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맘껏 즐기라고 했다. 그걸 제대로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우리 병원의 서비스를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될 거라 확신했다"고 했다. 선병원의 해외 탐방 프로그램은 이후 연 1~2회씩 실시되고 있다.

대전에 있는 선병원은 의료계에서 '튀는' 존재다. 이 병원의 환자 중심 운영 노하우와 서비스를 벤치마킹하겠다고 서울대병원·연대세브란스병원·서울아산병원·서울삼성병원 등 내로라하는 국내 대학병원·종합병원들이 모두 다녀갔다. 최근 4~5년 새 이곳을 찾은 병원은 100개가 넘는다. 병원 업무에 지장이 될 정도로 견학 손님이 몰려 요즘엔 한 달에 한 번만 외부 인사들이 방문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대형 병원에 발레파킹을 도입한 것도 선병원에서 시작된 아이디어이다.

외국에도 입소문이 나서 해외에서도 관심을 보인다. 일본·중국·러시아·몽골·베트남·태국 등 20여개국 병원·기관 관계자와 의료진이 선병원을 찾아왔다. 지방 병원인데도 외국 환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대전 지역 병원의 외국인 환자는 총 7047명, 이 중 77%에 달하는 5431명이 선병원을 찾은 환자였다. 3년 연속 전국 최우수 지역응급의료센터, '일자리 창출 공로 대통령상', 해외 진출 및 외국인 환자 유치 유공 포상(보건복지부 2013~2015년) 등 수상 경력도 다채롭다.

이 병원을 24년째 이끌고 있는 선승훈(56) 원장은 국내 의료계에 '서비스 씨앗'을 뿌린 선구자로 통한다. 선병원은 고(故) 선호영 박사가 세운 선정형외과의원이 뿌리다. 선 박사는 아들 다섯 명을 두었는데, 선승훈 원장은 셋째다. 선 원장은 원래 금융인이었다. 대학 졸업 후 미국계 은행 한국 지점에서 7년 동안 일했다. 금융계에서 일하는 게 천직이라 생각했다.

1992년 말 아버지는 뜻밖에도 그에게 병원 경영을 맡겼다. 자신이 할 일은 아닌 것 같아 버텼지만 결국 아버지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의사가 병원장을 맡는 경우가 많은 국내 의료계 풍토에선 드물게 그는 '별종' 병원 경영자가 됐다.

지난달 31일 대전 선병원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나 자신, 또 내 가족보다 병원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됐다"고 했다. 하지만 병원에 번듯한 원장 사무실 하나 없다. 10여명이 앉는 둥근 테이블 위에 노트북 한 대가 있는 곳, 그곳이 평소 의료진이나 직원들이 회의하는 공간인 동시에 자신의 사무실이라고 했다.



"병원도 친절할 수 있다"

"오늘은 병원 서비스의 새 날을 여는 날."

1993년 가을 당시 나이 서른넷 선승훈은 신라호텔에 들어서며 마음을 다잡았다. 병원에서 일을 시작한 지 1년. 머릿속엔 늘 한 가지 고민이 맴돌았다. '우리가 진짜 환자들을 위한 병원이 맞나.' 외국계 은행에 다녔던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대로 된 병원이라면 몸의 병뿐 아니라 환자 마음까지 어루만져줄 수 있는 곳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가장 절박한 건 환자를 대하는 병원 직원들의 마음가짐과 태도를 바꾸는 일이었다. "그래 서비스 교육이다." 그는 이날 신라호텔의 교육 담당자를 강사로 초빙하는 데 성공했다. 한 달 후 대전 선병원에선 간호사·직원 대상 서비스 교육이 시작됐다.

―당시엔 호텔 교육 담당자가 의아하게 생각했을 것 같다.

"우리 사회에 친절, 서비스라는 개념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병원에서 서비스 교육이라니, 그것도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지방의 작은 병원에서? 하하하. 한참 이야기를 나눈 끝에 상대방 입에서 '오케이'가 떨어지는 순간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외부 전문가로부터 서비스 교육을 받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된 건가.

"다른 병원에서 배우는 건 불가능했다. 그때만 해도 직원 교육 프로그램도, 서비스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었으니까. 호텔과 항공업계가 그나마 고객 서비스에 정성을 쏟는다기에 명함만 들고 찾아갔던 것이다. 이듬해 초 겨울엔 기장과 승무원을 교육하는 아시아나항공 객실연수원을 섭외했다. 우리 직원 30여명은 히터가 고장난 버스를 타고 상경(上京), 서울 등촌동에서 교육을 받았고 잠은 여관에서 잤다. 그때 교육받았던 사람들이 지금도 병원 곳곳에서 후배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런 서비스 교육이 뭐가 다르던가.

"표정·말투·마인드 등 모든 것이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신세계였다. 한번은 우리 남자 직원이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갔다가 입에 나무젓가락을 물고 있는 기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기장은 '쉬는 동안에도 입꼬리 올리려고 젓가락을 물고 있다'고 했다. 우리 현실이 떠올라 감탄과 한숨이 함께 나왔다."

―당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서비스에 왜 그렇게 몰두했나.

"우린 지방 병원이다. 내세울 게 없다. 전국 병원의 의료 수준은 많이 평준화됐다. 그렇다면 우리가 차별화할 수 있는 건 오직 정성과 환자를 위한 극진한 마음뿐이라고 생각했다. 병원은 찾아오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 그게 존재 이유다."

―환자들은 병원에 불만이 많아도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금융권에 있다가 병원 경영을 맡아보니 고쳐야 할 점이 많이 보였을 것 같다.

"사실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의사·간호사·직원들이 하나같이 퉁명스럽고 설명 잘 안 해주고…. 환자와 눈 마주치며 자상하게 대해주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환자를 귀찮아하는 모습도 많았다. 환자가 아니라 병원과 의료진이 갑이고 주인이었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직원들이 순순히 따라오진 않았을 텐데.

"인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으니 간호사·직원들도 그런 변화에 적응하기 힘들었을 거다. 생각과 습관, 조직 문화라는 게 정말 잘 안 바뀐다. 충격요법도 써봤다. 한번은 아침에 화장실 변기 속에 담배꽁초 등 오물이 있길래 맨손으로 청소를 했다. 창틀 먼지를 손가락으로 닦아 입에 넣기도 했다. 그 정도로 내 맘이 간절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직원들을 외국에 데려가는 건 위로와 격려 차원에서 이뤄지는 프로그램인가.

"그런 뜻도 있지만, 눈으로 직접 보여주는 게 최고라고 생각한다. 싱가포르 리츠칼턴호텔에 묵었을 때 그곳 서비스가 어느 정도일까 궁금했다. 우리 일행은 바에서 맥주를 한 잔 마신 후 바텐더에게 한 잔을 공짜로 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물론이죠, 고객님(Certainly, Sir)'이란 답변이 돌아왔다. 그 말을 곳곳에서 들었다. 이런 경험을 한 직원들이 돌아와 병원 서비스의 흐름과 분위기를 바꿔놓았다."

선병원은 지난 2008년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500병상 이상 종합병원 86곳에 대한 의료 서비스 평가에서 외래·입원 환자 부문 모두 'A'를 받은 9개 병원에 포함됐다. 이 조사는 그 이후에는 실시되지 않았다.

―의사들이 그동안 해오던 관행을 바꾸는 건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설득하고 변화시켰나.

"의사 중엔 '서비스는 무슨, 진료 잘하고 병 잘 고치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격 떨어지게 친절 교육이라고?' 같은 반응도 있었고, 회식 때 술잔을 쾅 내려놓으며 '될 법한 일을 해야지'라고 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달래고 빌고 설득했다."

―의사들의 분위기를 바꾼 결정적인 순간은.

"아버지가 움직이셨다. 의사 서비스 교육 때 참석해 직접 친절·인사 교육도 받으셨다. 회식 자리에선 '여러분 이게 맞는 방향 같지 않소. 우리 힘을 합쳐 좋은 병원 만듭시다. 대전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병원 만듭시다'고 하셨다. 최고 임원부터 신입 직원까지 모두가 서비스 교육에 참여했다."

―특별히 의사들을 변하게 하는 효과적인 교육 방법이 있었나.

"의사들에게 일어서서 90도로 인사하라고 한 건 아니었다. 다만 환자들을 정말 아끼는 마음을 가져달라, 그리고 그걸 표현해 달라고 했다. 의사들에게 환자와 의사 역할을 맡겨 '롤 플레이'를 하게 하고 그걸 영상에 담아 보여주는 방법은 효과가 좋았다. 의사들은 진료할 때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 보고 깜짝 놀라곤 했다.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존경받는 의사들의 모습을 찍어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좋은 의사란 어때야 하는가 생각도 많이 했을 것 같다.

"실력은 기본이다. 노력하고 공부해야 한다. 여기에 환자의 마음을 쓰다듬어주고 정신적으로 위안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사부작사부작'

그는 식당에서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일주일에 사나흘은 오전 6~7시쯤 식당에 나타나 그날 국과 반찬을 시식했다. 10년 넘게 그렇게 했다. 그는 "아주 고급 국과 반찬은 아니라도 내 입에 들어갈 만한 것인가 확인했다"며 "요즘은 매일 휴대전화로 식단을 체크한다"고 했다.

―병원식은 어떻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 건가.

"사람의 혀는 정확하다. 화학 조미료와 냉동식품은 사용 못 하게 했고, 음식은 짜지 않게 만들라고 했다."

선병원에서 볼 수 있는 특별한 장면 중 하나는 간호사들이 수첩을 들고 다니며 무언가를 적는 것이다. 간호사들은 수첩에 환자들의 특이한 점을 기록한 뒤 컴퓨터에 입력한다.

―간호사들이 뭘 그리 적는 건가.

"환자가 높은 베개를 좋아하는지 낮은 걸 좋아하는지, 예민해서 TV 소리조차 싫어하는지, 당뇨·고혈압 등 가족력에 대한 걱정이 있는지 등 관심 가져야 할 모든 걸 기록한다. 이 기록은 우리의 최고 자산 중 하나다. 이 환자가 다시 왔을 때 가장 적합한 서비스를 해줄 수 있다."

―간호사 이외에 다른 부문에서도 이런 기록 문화가 정착돼 있나.

"병원의 30여개 모든 부서가 상세한 매뉴얼을 갖고 있다. 기록과 매뉴얼은 우리 병원의 피와 살이다. 간호사용 가이드북엔 '발딱 응대'라는 항목이 있다. 손님과 얘기할 땐 즉시 일어나 눈을 마주쳐야 한다는 것이다. 세면대는 휠체어가 들어가도록 높이가 1m15㎝가 돼야 한다는 것, 승강기 내 손잡이는 전용 걸레를 사용할 것, 샤워실은 침대 카트가 들어갈 정도로 너비를 맞춰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어디서 그런 아이디어를 얻나.

"세상이 교과서이고 배움터이다. 책과 자료는 기본이고, 호텔·레스토랑·공항·길거리 등 볼 것과 배울 것은 세상에 널려 있다. 관심과 생각을 갖고 보느냐 그러지 않느냐의 차이이다."

그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보여줬다. 사진 2000여장이 담겨 있었다. 그는 "국내가 됐든 해외가 됐든 보고 배울 만한 것이면 모두 사진을 찍는다"며 "병원 인테리어, 디자인, 시설 개선에 대한 아이디어도 여기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이 병원 간호사·직원들은 다른 곳에서 일하는 것보다 할 일도 많고 신경 쓸 일도 많을 것 같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런 생활에 적응되고 나중에 환자들로부터 '병원에 있는 동안 고마웠다' '행복했다'는 말을 듣고 편지도 받으면서 조금씩 우리 일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 같다. 그래서 '사부작사부작'이란 말을 좋아한다. 조금씩 달라지라는 것이다."



평생 딱 한 번 아버지의 부탁… "병원으로 내려오거라"

그는 미국 버클리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조지타운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돌아와 시티뱅크 한국 지점에 취직했다. 회사도 일도 적성에 맞았다. 직장 내 위상도 탄탄했다. 주변에선 "장래가 기대된다"고 했다. 하지만 금융인의 삶은 거기까지였다. 1991년 말 아버지가 "대전으로 오라"고 했다.

선병원은 3형제가 운영하고 있다. 정형외과 전문의인 둘째 형(선두훈)이 이사장, 치과 전문의 넷째 동생(선경훈)이 치과병원장을 맡고 있다. 선 원장이 병원에 들어온 후 동생과 형이 차례로 합류했다. 선 원장이 경영에 참여했을 때 의사 37명, 416병상이었던 병원은 의사 202명, 834병상으로 커졌다. 하지만 그는 "병원을 맡고 4~5년쯤 될 때까지는 당장 때려치우고 싶을 때가 많았다"고 했다.

―아버지는 왜 의사도 아닌 당신에게 병원 경영을 맡겼다고 생각하나.

"돌아가실 때까지 그 답을 듣지 못했다. 당시 병원이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 같다. 성장은 맘대로 안 되고, 재무와 조직 등을 맡아줄 전문가도 없었다."

―30대 초반 나이에 병원 경영을 책임지는 건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젊은 나이에 설립자 아들이라고 설치는 것 아니냐는 뉘앙스가 느껴질 때 힘들었다. 늦은 밤에 나와서 술 사라는 전화를 시도 때도 없이 받았다. 의료사고 났을 땐 응급실에 가스통 들고 온 유가족을 달래야 했고, 칼을 들고 막무가내로 행패 부리는 사람도 해결해야 했다."

―지역 병원으로서의 어려움도 있을 것이다. 좋은 의사들 스카우트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고….

"삼고초려가 아닌 십고초려의 자세로 의사를 찾아다녔다. 다른 지역 병원보다 돈을 더 많이 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실력과 인품을 갖춘 명의를 여러분 모셔왔다."

―설득 비법이 있었나.

"진짜 좋은 병원을 만들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했다. 기술자가 아니라 사람 보살피고 헤아리는 병원을 만들어보자고 했다. 열정적으로 집요하게 설득했다. 다행히 내가 허튼 말 할 사람은 아니란 걸 알아주시는 분이 많았다. 의사들 입장에선 파격적으로 미국 등 해외에 1~2년씩 연수를 보내고, 빠른 결정으로 의사들이 원하는 장비를 구입해주는 등 진료에만 전념하게 해주는 환경도 분명 매력이었을 것 같다."

―해외 진출에도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

"작년엔 19개국, 재작년엔 17개국을 돌았다. 중국은 15번, 러시아는 7번을 다녀왔다. 외국인 환자 유치와 해외 진출 때문이다. 중국과 벨라루스에선 병원 건립 컨설팅과 향후 위탁 운영 계약을 따냈다. 최근 4년간 외국인 환자는 600%가 넘게 증가했다. 혼자 다니면서 우리 병원 소개하고 브리핑도 한다. 해외시장 길을 뚫으면 우리 국제팀 직원들이 실무 작업을 한다. 구둣방에 비교하면 나는 '찍새', 국제팀은 '딱새'라고나 할까."



한국의 메이요 클리닉을 꿈꾼다

선병원 응급실은 의료계에서 주목받는 시설 중 하나다. 대전선병원은 전국 122개 지역응급의료센터 대상 평가에서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환자들 대기 시간은 1시간 미만으로 전국 평균(5.9시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다.

―응급실을 특별하게 만든 계기가 있었나.

"2011년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유니버시티메디컬센터에 갔다가 충격을 받았다. 헬기 2대가 환자를 신속하게 병원으로 후송하는데 그 장면이 응급실에 CCTV로 생중계되더라. 모든 의료진이 완벽하게 준비하고 있다가 환자가 오자마자 순식간에 진료와 수술을 진행했다. 이런 응급실을 꼭 갖고 싶었다."

―환자의 병은 단발성이 아니라 복합적인 경우가 많다. 의사들의 협력이 중요한데.

"국제자동차 경주대회 포뮬러원(F1)을 생각하면 된다. 경주용 자동차가 불과 3~4초 만에 모든 정비 작업을 끝내야 성적을 낼 수 있듯이, 응급실도 관계자가 총동원돼 힘을 합쳐야 최고의 시너지를 낼 수 있다. 협진이라는 개념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미국 메이요 클리닉에서 배워왔다. 의료 기술과 시스템, 환자를 위한 정성에서 세계 최고 병원으로 꼽히는 곳이다."

최근 선병원에 서울 지역 대형 병원 관계자들이 잇따라 찾아왔다. 그들은 병원을 둘러보고 설명을 듣더니 "훌륭하다. 또 새로운 내용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다. 선 원장은 "국내 최고 병원이라는 곳에서 칭찬해주니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머리가 쭈뼛할 정도로 긴장됐다"고 했다.

손님 중엔 세계적인 심장내과 전문의로 메이요 클리닉과 삼성서울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오재건 박사도 있었다. 오 박사는 "선병원이 한국의 메이요라 해도 손색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선 원장은 "그 말대로 감히 한국의 메이요가 되겠다는 꿈을 꾸려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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