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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뉴스24] ‘인술(仁術)이 곧 실력’ 철칙 꿴 명의_이승구 박사
대전선병원 이승구 박사(정형외과 과장·국제의료원장)가 지난 1년간 쓴 글을 묶어 최근 책 한 권을 냈다. 이 박사를 만나기 위해 지난달 29일 오후 그의 진료실을 찾았다.

이 박사는 지난 34년간 가톨릭대 의과대학 정형외과 교수로 봉직했다. 그러면서 의학적 전문 내역과는 조금 다른, 임신과 출산은 물론 육아 과정에서 발견되는 소아의 육체발달과 신체 이상에 대한 전문의의 간단명료한 상식적 의학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늘 하고 있었다.


<디트뉴스24> ‘소아건강’ 의학 칼럼 총 50회 연재 책으로 펴 내

이를 위해 이 박사는 지난해 7월부터 올 들어 6월까지 지난 1년 간 <디트뉴스24>에 ‘소아건강(정형)상식’이란 주제로 총 50편의 의학 칼럼을 게재했다. 엄마, 아빠들이 가장, 자주 의아해하는 궁금증들에 대한 소아 및 정형외과 상식들이다.

이 박사는 연재 칼럼을 수정 보완한 뒤 묶어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의학상식이라고 하나, 일상에서 꼭 필요한 내용들과 함께 누구든 알기 쉽게 만들었다고 했다.

이 박사는 “엄마 아빠들의 자녀 성장에 대한 많은 의학적 의문을 조금이라도 해소시켜 내 아이들을 훌륭히 키우는데 작은 도움을 줄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책 출간 배경을 설명했다.

책은 이 박사가 의사로 재직하는 동안 벌여 온 상담 중 부모들이 가장 궁금해 할 만한 내용들을 발췌해 총 50개의 질문에 대한 답변 형태로 구성됐다.

이 박사는 자비로 책을 냈다.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30년 넘게 의과대 교수로 재직하며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이 책에 또 다른 애정이 간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얼까. 그는 “나이 들어 손자손녀들에게 무언가 줄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했다. 여기다 퇴직 후 발간한 첫 출판물이라는 점도 이유였을 것이란 짐작도 해본다.

이 책은 현재 대전선병원 외래 진료실 곳곳에 비치돼 있다. 판매가는 권당 1만2000원 정도. 하지만 책이 필요한 부모나 환자들에게는 최소한의 비용만 받고 판매한다고 했다.


선두훈 이사장과의 오랜 연(緣)…퇴직 후 선병원 부임

이 박사는 소아·수부·골관절 종양 등 소아정형 분야 권위자다. 대한골관절종양학회와 대한수부외과학회 회장도 지냈다. 이 분야 이름만 대면 알만한 그가 유명 수도권 병원에서 대전으로 온 이유는 무얼까.

사실 지역에선 이 분야 권위자가 딱히 드믄 게 현실. 그가 대전으로 오면서 이 분야 권위자를 한 명 얻은 셈이다.

그는 가톨릭대 의과대 주임교수로 재직했다. 의정부성모병원과 서울성모병원 부원장까지 지냈다. 20년 가까이 정부의 산업재해자문위원회(이하 산재자문위) 자문위원 및 수석자문위원을 역임했다. 산업재해 발생 환자들의 80% 정도가 정형외과 분야가 많은 특성 때문이다.

그는 산재자문위 수석자문을 맡아 산업재해환자들에 대한 산재보상법, 장애판정요령 및 보상 등의 자료집도 발간했다. 이 자료는 지금도 건강보험공단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당시 공을 인정받아 노무현 정부 때 표창장을, 이명박 정부 때는 옥조근정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러다 퇴직을 1년 앞둔 2012년 수석자문위원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정년퇴직을 몇 개월 앞둔 2012년 하반기 당시 이명박 정부로부터 차관급인 보건복지부 의무국장직을 제안받는다. 그러나 이미 서명까지 마친 뒤 의무국장 발령을 불과 두세 달 남겨 두고 정부의 방침이 바뀌면서 관료 입성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는 퇴직 후의 삶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30년 넘게 의사로, 또 의과대 교수로 지낸 세월을 돌아보며 조금은 쉬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 복이 많은 의사였던 모양. 정부의 의무국장 발령이 무산된 후 며칠 뒤 대전선병원 선두훈 이사장으로부터 선병원 근무를 제안받는다. 사실 그는 선두훈 이사장의 가톨릭대 의과대 정형외과 은사 겸 선배 의사다. 이런 인연으로 선병원 근무를 요청받은 것.

그는 2013년 2월 28일 퇴직 후 곧바로 3월 4일 선병원 정형외과 과장으로 부임했다. 34년 의과대 교수직을 지낸 뒤 4일 쉬고 또 다시 종합병원으로 돌아온 것.


국제의료원장 맡아 해외환자유치 총괄

이 박사에게는 최근 또 다른 타이틀 하나가 붙었다. 선병원 국제의료원장이다.

선병원은 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해외환자유치 분야의 선두주자다. 선병원 전체 수입 중 국내 환자 대 해외 환자의 비율이 65% 대 35% 정도. 다른 병원에 비해 해외환자들이 꽤 많이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 박사는 바로 이 해외환자유치를 총괄하는 책임자를 맡은 것.

국제의료원 산하에는 기획팀, 병원 수출팀, 외국환자 유입 및 홍보팀, 외국인환자 코디네이터팀 등 4개의 파트로 구성돼 있다. 내국인 10명에 외국인 8명 등 18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역시 이 박사의 능력과 의술을 잘 알고 있는 선두훈 이사장의 발탁 인사이자 배려인 셈.


의사로 일 하며 4명의 어린 환자 ‘잊을 수 없어’

골종양 등 소아정형 분야 권위자인 그도 아픈 기억이 있다고 했다. 의사로서 미안하면서도 현대 의술로도 손 쓸 수 없이 소중한 생명을 떠나보내야 했던 기억들을 또렷하게 기억해 냈다.

그는 먼저 수십 여년 전 국내 유명 기업 CEO의 어린 딸을 치료했던 경험을 떠올렸다.

이 여자아이는 9살이 될 때까지 키가 135㎝에 불과했다. 유전적으로 난쟁이였던 것. 아이의 부친 역시 키가 작아 유전학적 소견을 보였다.

이 박사는 어린 여자아이의 다리를 늘리는 치료를 시작했다. 그렇게 1년 반 동안 135㎝에서 152㎝ 정도까지 자라도록 했다. 그는 “당시 다리를 늘리는 일이 매우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키는 커졌는데, 늘어난 키에 비해 손이 여전히 작았다. 다리를 늘려놨으나 몸에 비해 손이 비정상적으로 작았기 때문.

이 박사는 다시 아이의 아버지인 이 기업인에게 또 다시 “1년 반 정도의 시간을 달라”고 했다. 손을 부러트려 인공관절을 넣는 등 늘리는 치료를 시작했다. 키와 손 등에 골 연장술을 한 것.

하지만 가족도 지쳐갔다. 아이의 부친은 이때 더 이상의 치료를 포기했다고 한다. 이 박사는 “다리에 이어 손 등 골연장술을 마저 끝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했다.

두 번째 사례 역시 어린 여자아이였다. 14세 미국인 여아로, 대퇴골에 악성골육종이라는 악성암이 생긴 심각한 사례였다. 이미 미국에서조차 치료를 포기한 채 한국에 들어 와 이 박사에게 맡겨진 것.

하지만 이 미국인 여아는 이미 폐 등 장기에 암이 상당부분 전위된 상태였다고 한다. 이 박사는 수 차례 수술을 진행했다. 그렇게 11개월 간 이 미국인 아이를 돌봤다. 하지만 미국에 돌아간 후 2개월 뒤 끝내 사망했다고 한다.

그는 “이 미국인 여자아이는 고통이 매우 컸을 텐데도 불구, 꽤 명랑하고 애교도 많아 오랜동안 잊혀지지 않는다”며 “미안하기도 하고 안타까운 마음 뿐”이라고 했다.

세 번째 기억은 결과가 동일한(?) 사례다. 남·여 두 명의 사례인데, 먼저 선천성 고관절탈구증이 있던 1살짜리 여아다. 이 여자아이는 고관절이 탈구돼 있어 회음부까지 넓어져 있던 상황.

이 박사는 이 여아를 수술 등을 거쳐 6개월간 치료해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퇴원시켰다. 이후 5년 정도 여아의 상태를 추적하다가 연락이 끊겼다. 그렇게 세월은 20여년이 지났다.

어느 날 이 박사가 진료를 보고 있던 중 한 젊은 여성이 진료실로 찾아 와 오래 전 사연을 꺼내며 주례를 요청했다고 한다. 당연히 당황했던 이 박사는 20여년 전 자신이 선천성 고관절탈구증을 치료했던 1살짜리 여아였던 것.

또 다른 사례는 5세 남아. 이 아이는 택시 바퀴에 다리가 끼어 매달린 채 한참을 끌려가면서 한쪽 다리의 피부가 완전히 벗겨져 병원을 찾은 응급환자였다. 이 박사는 17~18시간이라는 대수술을 했고, 이어 8차례 수술을 더 했다고 한다. 그렇게 3년 정도 치료를 했다. 그 사이 피부이식도 마쳤다. 이후에도 림프부종으로 고생 때문에 상당히 힘든 치료를 진행했다.

역시 이 남자아이는 18~19년이 흘러 이 박사의 진료실을 찾아 주례를 요청하더라는 것. 한쪽 다리를 절었던 이 남성은 여의도 증권가에 근무하고 있다는 등 자신을 소개하며 20여년 전 자신을 한쪽 다리를 치료했던 이 박사를 가슴 속에 담고 있다고 결혼식 주례를 요청했다고 한다.

물론 이 박사는 흔쾌히 이 두 남·여의 결혼식 주례를 섰다.

그는 “사람이 기억에 남는 게 무얼까 생각해본다. 두 가지다. 바로 좋았던 기억과 아주 나빴던 기억이다. 나머지는 모두 망각을 하는 게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문뜩 의사로,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잘 치료했던 기억보다 안타까운 기억이 오래 남는 게 인지상정인가 보다”라며 웃었다.

다른 병원이나 의사들이 포기했던 환자들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던 근성(?)이 있었던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지금 생각해 보면 ‘의학적으로 생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들에게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다 눈을 감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옳은 일 아니었나’라는 생각도 해 본다”면서 “젊은 시절 ‘한 번 해 볼까’ 식으로 내가 너무 공격적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의사는 너무 공격적이지 않아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예전엔 그랬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아쉬움과 여운이 남는다는 것.


지역, 여전히 미숙한 진료 아쉬움도 토로

정형외과 베테랑 의사인 이 박사도 대전에 온 뒤 아쉬운 점이 있다고 했다. 본인 역시 과거 공격적인 진료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지역에서 공격적인 의료진이 너무 없어 아쉽다는 것.

그는 “악성암이나 골육종 등의 환자에 대해 공격적으로 해 보려는 의료진이 많지 않고, 미숙한 치료 분야가 있다”고 했다. 결국 지역 의료기관에서 진단하고 열심히 설명하고 나면 정작 수술해야 할 무렵 서울로 떠나는 환자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의료진이 사명감을 갖고 큰 수술이나 질병에 대한 치료도 ‘죽기 살기로’ 달려들어 해 보려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 역시 의사는 기본적으로 실력이 갖춰져야 한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의사가 되기 전에 사람이 먼저 돼야 한다”는 인술(仁術)을 강조했다.

이 박사는 “요즘 의대에 진학하는 젊은 친구들은 매우 똑똑하다. 그런데 이후 전공의나 전문의가 돼서 하는 행위들을 보면 인성교육이 안된 친구들이 많다”고 꼬집었다.

그는 “과거 의과대에서 강의할 때면 늘 강조하는 것이 ‘심신의 건강’에 대한 중요성이었다”며 “심신의 건강을 보살피는 게 의사인데, 마음을 먼저 보살피고 질병을 보살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환자가 의사를 믿고 따라와 줄 수 있는 건 결국 의사의 인성이 뒷받침돼야 하는 문제다. 그래야 환자의 심신과 건강을 보살펴 줄 수 있다”고 했다.

이 박사는 “병원의 진정한 홍보 주체는 ‘환자’다. 환자들의 입소문이 진짜 훌륭한 홍보”라며 “누구나 다 그렇게 말하지만, 나는 특히 인성교육을 더 많이 강조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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